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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 살아온 지 딱 20년이다. 난 아직도 젊디 젊은 듯 한데 테마스토리라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변에서 보는 내가 이렇게 다른가 보다. 1995년 전문의로서의 첫 시작은 진단혈액과 세포유전이었다. “아~이 사람은 염색체 11번 같은데~, 이 세포는 꼭 진달래꽃 색깔이네...” 이것이 당시 들어 앉아 있던 나의 세상이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또 현미경 속 세상인지.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며 집과 검사실을 오가는 후배들이 있으리라 생각하면,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사실 지금의 나는 종이와 모니터에 새겨진 글자나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이 얼마나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답지 않은 생활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무실이 검사실을 거치게 되어 있어 가끔 검체와 장비, 그리고 검사업무에 열중하는 직원들을 보는 것.
얼마 전 우리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의 job description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기 어렵다는 후배 전문의의 고민 섞인 말을 들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까? 우리는 임상에서 매 순간 일어나는 의학적 결정에 객관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임상적 결정의 70%가 검사 결과에 의존하고 있음에 전 세계 의료계는 동의하고 있는 바이고, 앞으로 그 의존도는 더욱 더 높아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가 커버하고 있는 영역은 어느 특정 질환군에 혹은 어느 특정 진료과목과도 유사하지 않다. 현존하는 모든 임상과를 포괄해야만 하는 업무이다. 게다가 환자와 대면하고 청진기를 목에 걸고 있는 전통적인 의사상과도 사뭇 떨어져 있는 “의사”이다. 우리의 변연이 너무 넓다 보니 그리고 통상적으로 그려지는 의사의 모습과 조금은 다르다 보니, 우리 스스로 정리하기가 참 어려운가 보다. 나는 반대로 한번 말하고 싶다. 우리의 job description이 모호하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description이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검사실신임이사와 보험이사, 우리학회에서 거친 나의 역할들이었다. 나는 이 활동을 수행하며 검사항목에 포함된 의사업무량과 우수검사실 신임인증제도가 우리에게 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검사 항목에 “의사업무량”이 포함되어 있고, 어느 누구도 왜 검사에 의사의 업무량이 들어가는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즉 검사에는 당연히 의사의 역할이 있다는 공공연한 인정이다. 게다가 민간 전문가단체(대한진단검사의학회)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우수검사실 신임인증이 의료 결과의 개선에 크게 기여함도 다양한 곳에서 공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자 이제 다시 job description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검사 결과의 품질을 보증되어야 한다는 것과 의료결과에의 영향이란 부분 대한 우리 전문의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주목하였으면 한다. 검사 결과의 품질보증을 위해 우리는 우수검사실 신임인증이란 제도를 만들었고, 바로 검사 품질보증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 전문의의 가치가 검사항목의 “의사업무량”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일들일 텐데, 모두 태동 초기에는 우리 내부에서 혹은 외부 의료계에서 수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견뎌내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선배들께서 넘겨주신 우리의 시장이다. 이제 우리의 상품을 얼마나 빛나게 할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그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먹거리는 과연 무엇이 될까? 많은 우리 전문의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있는 곳에 그 먹거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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