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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녹십자의료재단 조현찬

필라델피아염색체(Philadelphia chromosome, Ph)란 각종 혈액암, 특히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세포에서 9번과 22번 염색체의 장완 말단이 일정 부위에서 절단되고 위치를 바꾸어 서로 이동한 상태, 즉 상호 균형전위(reciprocal balanced translocation)에 의해서 짧아진 22번 염색체를 말한다.
펜실바니아의대 병리학교실의 종양생물학자인 Peter C. Nowell (1928-2016) 박사가 이와 같은 염색체 이상을 처음 발견했고, 필라델피아 염색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1960년이었다. 1956년에 인체 염색체 수는 46개라는 것이 처음으로 밝혀질 정도로 당시 염색체 연구의 역사는 매우 짧았다. 염색체 이상을 찾기 위해서는 분열세포를 현미경으로 사진 촬영한 후 염색체를 하나 하나씩 잘라내고 크기 순으로 배열했다.
Nowell박사는 당시 아무런 증거는 없었지만 종양과 유전자 변이의 관련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폭스체이스 암센터(Fox Chase Cancer Center)의 대학원생인 David Hungerford (1927-1993)와 같이 배양 중인 백혈병세포에서 세포분열 양상과 특수염색으로 많은 염색체를 관찰하던 중 만성골수성백혈 종양세포에서 조그마한 비정상 염색체를 발견하였다.
당시 종양의 유전적 근거에 대해 별다른 생각들이 없었던 때인지라 노웰의 연구결과는 단일 염색체내 특정 유전결함으로 인해 결함세포가 축적되고 종양형성 세포군으로 이어진다는 첫 번째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Nowell과 Hungerford가 발견한 필라델피아 염색체란 그들이 일하던 도시 이름을 딴 것이며, 이 조그만 염색체(Ph1이란 약어를 사용)는 골수계 종양인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일정한 표지자가 되었다.
●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본질은 9번과 22번 염색체의 전위
그런데 당시 많은 학자들은 혈액종양 염색체 이상이 종양 그 자체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 후 다른 종양에서도 일정한 양상의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었고, 또한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작아진 이유가 9번 염색체와의 전위에 의한 것이란 사실을 알기까지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흥미로운 발견이었지만 마땅한 연구방법이 없던 당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갔는데 1970년대 들어 염색체 분염 기법(chromosome banding technique)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즉 염색체에 형광염료를 처리하면 염색체에 따라 독특한 염색대 양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염색체 위치에 따라 DNA와 단백질이 뭉쳐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미국 시카고대의 유전학자 Janet D. Rowley (1925-2013) 교수는 이 기법을 써서 1973년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Nowell교수팀의 추정과는 달리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9번 염색체 말단과 바꿔치기 된22번 염색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22번 염색체의 말단이 그보다 크기가 작은 9번 염색체 말단과 바꿔치기 되면서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그 결과 9번 염색체는 약간 더 커졌지만 그 자체가 워낙 커서 Nowell교수팀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다른 염색체 사이에 교환이 일어나는 현상을 전위 또는 전좌(translocation)라고 부른다. 이러한 염색체는 만성골수성백혈병 뿐만 아니라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id leukemia)과 급성림프모구백혈병 (acute lymphoblastic leukemia)에서도 간혹 발견된다.
● 세포유전학 명명법 규약(ISCN)에 따라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Ph"로 표기
1970년대 이후 혈액종양에서 많은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었지만 Ph2, Ph3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안이 나타나지 않아, 20년이 지난 1990년 세포유전학 명명법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System for Human Cytogenetic Nomenclature, ISCN)에 의거하여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어깨 번호를 생략한 "Ph"라는 약자를 권장하였다.
따라서 최근에 발간되는 대부분의 문헌이나 참고서적에서는 ISCN 명명법(2020)에 따라 Ph란 약어를 사용하는데 일부 전문서적에서는 Ph1라고 잘못 표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어깨번호가 아니 아라비아 숫자나 ’(윗 첨자로 coma), '(prime)을 사용한 Ph1, Ph’, Ph' 등도 발견되어 의학도들에게 많은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Ph는 각종 문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핵형을 표기할 때는 der(22) t(9;22)(q34;q11)라고 기재해야 하며, 대응되는 9번 염색체는 der(9)t(9;22)(q34;q11)로 표기한다. 1991년 이후부터 발간된 ISCN 책자 내용에 나온 원문은 아래와 같다.
The term Philadelphia chromosome is for historical retained to describe the derivative chromosome 22 generated by the translocation t(9;22)(q34;q11). The abbreviation Ph (formerly Ph1) may be used in text, but not in the description of the karyotype, where der(22)t(9;22)(q34;q11) is recommended. Similarly the derivative chromosome 9 resulting from the t(9;22) is designated der(9)t(9;22)(q34;q11).
ISCN (2020): An International System for Human Cytogenetic Nomenclature, Mitelman F (ed); S. Karger, Basel, 2020.
● 분자세포유전학으로 발전
세포유전학: 만성골수성백혈병 만성기 환자 92%는 9;22 전좌형을 보이고, 약 8%는 9, 22번 염색체를 포함한 복잡성 전위(complex translocation)를 보인다. 그리고 극소수(1% 이하)는 잠재성 재배열(cryptic rearrangement)이라 하여 통상적인 염색기법으로는 발견되지 않고, 제자리형광부합법(Fluorescence in situ hybridization)나 분자진단 기법으로만 검출이 가능하다.
환자가 오랫동안 만성기를 보내면서 암화 진행과정을 거칠 때 첫 번째로 나타나는 소견은 이차성 염색체 이상의 출현이다. 가장 흔한 이차성 염색체 변화는 +8, i(17)(q10), +der(22) 등이다. 드물게는 +17, +19, + 21, -7, -17, or Y, 또는 t(3;21)도 출현한다.
9q34 부위의 유전자는 ABL1이고, 22q11.2 부위는 BCR이라 부른다. 염색질 교환(translocation)에 의해서 22번 염색체에 유전자융합(gene fusion)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BCR-ABL1 융합단백(fusion protein)은 ABL 단백과 비교했을 때 티로신키나제(tyrosine kinase) 활성도가 현저하게 증가한다.
●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날 - 9월 28일
필라델피아 염색체 발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9월 28일 필라델피아 에서는 "Philadelphia Chromosome Symposium: Past, Present and Future – the 50th Anniversary of the Discovery of the Philadelphia Chromosome"란 주제로 의미 있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필라델피아 시의회와 Michael Nutter 시장은 이 날 9월 28일을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날'로 선포했다. 필라델피아염색체 심포지엄(Philadelphia Chromosome Symposium)은 폭스체이스 암센터 (Fox Chase Cancer Center, FCCC)가 후원했으며, 행사 장소는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펜실베니아대학이었다.
심포지엄에는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발견 및 분자적 특성, 만성골수성백혈병에 대한 성공적인 치료법 개발, 다양한 유형의 암에 대한 분자표적 치료법(molecularly targeted therapies) 설계를 위한 향후 전망에 대한 세션이 포함되었다.
이 심포지엄은 Joseph R. Testa가 기획했으며, 초청연사로는 Felix Mitelman, Peter Nowell, Janet D. Rowley, Nora C. Heisterkamp, Owen N. Witte, Nicholas B. Lydon, John M. Goldman, Charles L Sawyers 및 William R. Sellers과 같은 혈액학 저널에서 자주 만나는 대학자들이 총동원되었다. 또한 Ph 염색체를 처음 발견하는데 사용되었던 현미경을 포함한 기념기구들은 Jennifer JD Morrissette와 병리학자 Peter Nowell과 David Hungerford 가족의 협조로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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