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대한의학회 정책이사/혁신의료기술위원회 위원장
이유경


유럽의 CE 마크 획득에 적용되어 오던 Medical Device Directive (MDD)와 In Vitro Diagnostic Directive (IVDD)가 그 생명을 다하고, 이제는 Medical Devices Regulation (MDR)과 In Vitro Diagnostic Regulation (IVDR)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로써 의료기기 허가는 임상관점을 강화하고 진정한 전주기적 관점으로의 방향성을 잡은 모양새다.

진단검사를 매우 복잡한 문장으로 서술하지만, 실상 임상의사가 이용하는 이유는 의학적 판단을 위해서이다. 진단은 무엇인가? 어떤 치료를 선택할까? 치료를 중단해도 될까 등등… 즉, 임상의사는 무엇을 할까 또는 말까 사이 길 가름에 진단검사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 신의료기술평가에서는 체외진단검사를 환자 인체 외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위험성이 낮다고 정리하는 것은 실제 임상 현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정리이다. 행위 자체로 보면 언뜻 맞는 설명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단검사의 위험성을 행위 자체로 판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진단검사의 진짜 위험은 위의 설명과 같이 결과에 의한다. 진단검사의 진양성과 진음성은 검사가 환자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므로, 환자는 이 검사결과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였을 때, 긍정적 건강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위양성과 위음성은 어떠한가? 검사의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위양성은 주로 환자에게 불필요한 후속 검사 혹은 치료를 받을 뿐 아니라 질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의 위험이란 불이익의 원인이 된다. 위음성은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여, 환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도 존재한다.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들이 체외진단의료기기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용설명서(Information for Users, IFU)에서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지 않는 내용이 있다. 의료기기의 민감도와 특이도 결과치이다. 허가 단계에서 관찰된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였을 때의 성적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는 경우가 빈번해서이다. 우리가 흔히 서로 다른 배경의 전문가가 만나서 대화할 때 같은 한국말이라도 통역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우리에게는 정확도(accuracy)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체외진단의료기기 허가 완수가 지상 목표인 개발/제조자는 주로 측정정확도(measurement accuracy)가 먼저 떠올리지만, 시판 후 임상 현장에서는 진단정확도(diagnostic accuracy)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간극이 현재 우리나라 체외진단의료기기의 IFU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할 수 있다. 측정정확도는 진단정확도에 영향을 주지만, 진단정확도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체외진단의료기기에서 임상관점의 강화란, 바로 이런 간극을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시판 후 의료현장에서 의료기기는 임상적으로 어떤 환자에게 무엇을 행하는데 사용되고, 그 결과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그 평가의 관점이 이동하는 것이다. 의료기기의 개발에서 임상적 관점의 반영이 필요하다는 것은 의료기기 개발이 갖는 오랜 숙제이기도 했다. 임상의료진의 사용경험은 의료기기의 개발과정에 반영될 뿐 아니라, 시판 이후에도 임상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의 수집과 반영의 과정을 통해 의료기기의 개선이 수반되어야 할 필요성을 의료기기 개발자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즉 의료기기는 허가가 개발의 완성이 아닌, 의료기기로서 생활서의 시작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그럼 전주기적 관점은 임상관점의 강화와 다른 이야기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의료기기의 전주기를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의료기기가 제조자에 의해 개발/제조되고, 허가에 필요한 검증이 이루지는 단계인 시판전단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규제허가가 이루어지는 규제허가단계, 규제허가 후 실제 의료현장에서 사용이 이루어지는 시판후단계로 이어지는 의료기기의 전체 생활사를 전주기라 일컫는다[그림 1].


그림 1. 의료기기의 전주기 (total product life cycle, TPLC)

글의 서두에 최근 글로벌 규제동향의 큰 변화로 MDR과 IVDR의 도입을 언급하였다.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주로 사용하는 체외진단의료기기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IVDR에서는 의료기기의 위험도에 따라 A, B, C, D 4개 등급이 부여되는 점이고, 등급 분류의 원칙은 GHTF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전 IVDD 체계에서는 체외진단의료기기는 1등급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허가당시 임상시험(clinical investigation)을 넘어 의료기기는 임상평가보고서(clinical evaluation report, CER), 체외진단의료기기는 성능평가보고서(performance evaluation report, PER)을 제출해야 하는 점이다. 임상평가(clinical evaluation) 또는 성능평가(performance evaluation)는 의료기기를 제조자가 의도한대로 사용할 때, 임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포함한 임상성능과 안전성 관련한 임상데이터를 과학적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생성, 수집, 분석, 평가하는 체계적이고 계획된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 임상평가와 성능평가는 임상전문가와 방법론 전문가, 의료기기 전문가의 협업이 필요한 상당한 난이도의 업무이다. 때문에 최근EU에서는 CER 또는 PER제도의 실행을 위해 전문가패널을 구축하고 이들이 임상평가보고서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12개의 분야별 전문가 패널이 구축되어 있고, 이들 명단은 모두 공개되어 있다 .

우리나라는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체외진단검사는 주로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가 관장하는 영역에서 검사의 도입과 검사수행체계의 구축, 실행 과정에 대한 품질관리가 이루어진다.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에서 품질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이미 우리나라 대장암검진 결과와 대장암 등록 결과를 분석하여, 보건의료 budget에 미치는 영향도 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1 Expert panels (europa.eu), https://ec.europa.eu/health/medical-devices-expert-panels/experts/expert-panels_en, accessed Oct. 02, 2022.

진단검사의학재단과 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를 중심으로 체외진단검사의 수행과 결과보고에 이르는 과정과 결과단계에 대한 질관리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다. EU에서 촉발된 규제허가의 변화는 전세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임상평가의 경험을 충분히 갖고 있는 나라 역시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임상평가를 방법론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의료기술평가에 적용하는 방법론과 유사하며, 임상 사용경험을 위해 다양한 의료기기 이상사례수집 데이터베이스와 의료기기 회수/중단 등의 정보까지 포함하는 차이가 있다. EU에서 임상평가를 제도화하였고, 이는 International Medical Device Regulators Forum (IMDRF)에서 제시하는 바이기도 하다. 임상평가가 규정하는 바를 의료기기의 개발과 제조 측면에서 해석해 본다면, 규제허가는 의료기기 생활사(life-cycle)의 시작점이고, 시장에서의 사용 경험을 과학적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합성하고 보고하도록 한다. 이는 시장에서 관찰된 바를 의료기기의 개선으로 반영하고 다시 관찰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점진적 개선이 이루어 지도록 유도하는 체계이다. EU에서 도입한 임상평가는 세계 여러 나라의 규제로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임상평가가 도입됨으로 임상평가의 타당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임상평가 자체의 계획 수립 등이 가능한 전문가의 확보는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는 체외진단의료기기에 대한 임상평가의 계획수립부터, 수행, 검토가 가능한 기본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에 필요한 체계적문헌고찰 등 연구방법론의 보강은 해결해야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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