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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제일 더운 여름인가 싶을 만큼 심한 혹서 때문에 정신이 점차 혼미해질 즈음 그래도 다가오는 계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네도 싫지만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후회나 미련이 없이 살아야겠다는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게 자연이 주는 지혜로움인가 봅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진단검사의학과에 발을 담그게 되면서 전공의가 많지 않은 교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만 거의 모든 1년 차 새내기들이 처음으로 부딪히는 진단검사의학 분야가 진단혈액분야일 겁니다. 즉 말초혈액과 골수 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죠. 전공의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골수 판독을 하고 교수님의 확인을 받고 진단을 맞췄을 때의 기분을 가끔씩 떠올립니다. 지금은 일상화되어 버린 일들 중의 하나로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참으로 어렵고 끝이 없어 보이고 혼란스럽고 그랬었나 돌이켜 보기도합니다.
진단혈액연구회가 생겨서 나 혼자 고민했던 일들이 다른 분들께도 고민이 되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시려고 하는 선배 교수님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노력이 더해져 어엿한 학회로써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분들과 동료들, 그리고 이 길을 새로이 걷게 된 분들께 새삼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가 진단혈액분야의 전문가로써 길을 가는데 항상 길잡이가 되어 주시고 때로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시는 진단혈액학회와 회원들 모두가 끊임없이 같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뿌듯하고 좋습니다.
20년 전에는 막연한 상상력에 기대야 할 정도였던 검사들이 실제 검사실에서 실현되는 걸 보면서 특히 유전체 검사들은 우리가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현실감이 없다가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제게는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개념이 다른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될 때마다 가장 기본적인 검사들의 존폐까지 생각하게 되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새로운 진단검사법이 도입되어도 기본이 되었던 검사결과들의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원인을 밝히는데 혹은 그 이후의 결과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기본의 중요성과 그것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주는 발전된 기술들과의 조화가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생장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 조혈모세포와 비슷하지 않나요? 자기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무한한 잠재력으로 새로운 환경이 올 때마다 무엇으로는 진화 발전할 수 있는 분야 그 중심에 전문인력의 판독과 지혜가 중요한 진단혈액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만나서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행복한 학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올 한해도 점차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학회와 더불어 학회원 모두 진단혈액분야의 일원으로 자부심과 긍지를 한껏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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